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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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녀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생활을 이어온 나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시댁이 있는 과천으로 왔다. 교회를 찾던 중 중신교회에 오게 되었고 습관처럼 예배를 드렸다. 고등부와 청년부를 거쳐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기에 이곳에서 믿음생활도 역시 내가 만든 율법 안에서 이루어졌다. 믿지 않았던 남편과 함께 주일을 지키며 ‘착하게 열심히 잘 살고 있어’라는 자기만족의 착각에 빠져 살아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늘 걸림돌이 있었다. 오랜 지병을 앓고 계신 친정엄마를 챙겨야하기에 항상 힘들고 지쳐있었고 내 방식대로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주 엄마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친정에 가는 나의 열심을 방패로 형제들이 돕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과 엄마를 아프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정당화했다. 엄마는 당신의 병을 남편 탓으로 돌리고 재활의 의지는커녕 늘 부정적인 말들만 쏟아 놓으셨다. 그 때마다 엄마와 싸우고 돌아와 후회하는 삶들이 15년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예수님을 전하기보다는 나의 뜻을 주장하며 상처를 주고받았다.
2년 전 엄마가 또 뇌경색 후유증으로 쓰러지시고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직장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친 나의 몸은 견디다 못해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게 되었다. ‘친정, 시댁 그리고 직장과 내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왜? 나에게...’ 라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후원자에게 나의 상태와 생각을 고백하였다. 지체들의 선포와 기도를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셔!’를 외치며 한 몸으로 가게 하셨다.
수술 당일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 기대되었다. 수술 회복 후 친정과 시댁 식구들은 나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하려는 것을 내려놓을 때가 된 건가? ‘하나님이 하셔!’가 이런 건가... 내가 아프면 엄마는 누가 돌볼까? 형제들이 할까?’ 결국 하나님은 나에게 그냥 다 내려놓게 하셨고 요양사와 오빠네 가족들이 엄마를 챙기기 시작했다. 회복 후 다시 주말마다 엄마를 찾아갔다. 두 손에 가득 음식이 아닌 사랑과 기도의 마음으로 기쁘게 향했고, 어색했지만 사랑고백을 시작으로 그렇게 엄마와 함께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벌써 2년 반이 지났고 엄마는 그 어떤 음식보다, 물질적인 도움보다 예수님을 기다리셨고 다섯 가지 사랑고백과 기도를 ‘아멘’으로 따라하셨다. 남편과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시던 엄마는 아버지와 자녀를 위해 기도하시고, 천국 소망을 바라고 계시고 ‘하나님이 하셔!’를 외치셨다. 엄마의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성품도 조금씩 변화 되었고 떨어져 계시지만 시골교회에 다니신다.
원망의 말보다는 긍정의 말을 하시는 엄마를 보며 그동안 나의 고집과 습관, 율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하셨다. 아직도 몸은 아프시지만 현관문을 나설 때 전에는 외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손을 흔드시던 엄마가 이제는 ‘하나님이 하셔!’를 어린아이처럼 외치시며 빨리 가라고 손을 흔드신다. 늘 뒤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이제는 성령님이 엄마와 함께 하신다고 믿기에 먼 길을 오는 나의 마음은 가볍고 기쁘고 평안했다.
지금도 엄마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난 행복하다.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이 하셔!가 바로 이거였구나’를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랜 세월 가려졌진 나의 수건을 걷어주신 그 은혜가 지금이라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나는 이미 주님의 뜻대로 부르신 자녀야! 예수님의 형상 따라 지체와 가족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어! |